최근 국내 병원이 싫다며 해외로 나가 원정진료를 받은 사람이 지난해 2000여명에 달하며 이들이 사용한 돈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추정했다. 한국인의 해외 원정진료 실태와 외화 유출 비용은 갈수록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易) 원정진료의 물꼬를 튼 사례가 있어, 주인공을 찾아 원정진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살펴봤다.[편집자주]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유명철 교수. 그는 얼마전 중국으로부터 낭보(朗報)를 전해들었다.
경희의료원 유명철 교수
선천성 고관절 부위 구축증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왕샤오페이(王小飛)라는 17세 소년이 그에게 수술을 의뢰해 온 것.
사실 이 환자는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정형외과 의사들을 모두 찾아다녔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그 의사들로부터 하나같이 유명철 교수를 추천받았다고 전했다.
왕샤오페이는 유 교수의 수술가능 진단 통보를 받은 직후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며칠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환한 미소로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며 중국으로 돌아갔다.
유 교수는 "그동안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엄청난 통증에 시달렸을텐데 의외로 밝게 성장했다"며 "이제 4개월 후면 정상인의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흐믓해 했다.
역(易) 원정진료 물꼬 트다
이번 왕샤오페이의 수술 사례는 국내에서 흔치않은 외국인 원정진료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 하다.
더욱이 인구 대국인 중국에서 한국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은 해외 원정진료비로 연간 1조원을 낭비하는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해외 원정진료 대상 국가가 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같은 대국의 원정진료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이번 사례로 절실히 깨달았다"
유 교수는 이렇게 자신하며 역(易) 원정진료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였다.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
"한국인의 원정진료를 나쁘다고 비난만 할 수 없다. 환자라면 상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원정진료에 대한 유 교수의 견해는 확고했다. 상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현실에 등을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것.
내국인 해외 원정진료를 줄이고 외국인 원정진료를 늘리기 위한 해법으로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국민들에게 의료의 다양성을 선보일 수 있도록 의료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즉 국민의 기호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여러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
국가는 생활보호 대상자에 대한 공공의료 부분을 책임지고 민간의료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게 그의 견해다.
"다음으로 의사의 의욕을 꺾지 말아야 한다"
최첨단 기술이나 기기 등을 도입, 활용하고 싶어도 현실의 벽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국내 의료서비스의 질이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유 교수는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의료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유 교수가 이번 수술을 의뢰받을 수 있었던 건 수십차례의 시범시술과 학회 발표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하고 의료진은 의료진으로써 해야할 임무를 성실히 이행할 때 원정 진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
유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국민의 원정진료와 국산품 애용을 동일 개념으로 봐선 안된다"며 "원정진료를 떠나는 환자들을 나무랄게 아니라 그들이 원정진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면 된다"고 피력했다.
박대진기자 (djpark@dailymedi.com)
2004-08-15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