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유전자가 있었다. 21세기 초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기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방대한 양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일이 앞으로의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인류의 달 착륙에 비견되는 이러한 중대한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전산학자와 실험생물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차세대 생물학자를 교육하는 일이다. 우리가 영국 생어(Sanger)연구소의 인간 유전체 워크샵 장학생에 선발된 고인송 교수(의과대학 의공학교실)를 주목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미국 국립보건원과 함께 인간게놈프로젝트 수행의 주관기관이었던 영국의 생어연구소는 정기적으로 ‘Open Door Workshop - 인간유전체 서열의 활용’이라는 유전체 분야 고급연구자 워크샵을 개최한다. 1년에 3번씩 전 세계 과학자들을 초청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유전체 활용 교육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이 워크샵은 매번 20명만을 선발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데 고 교수는 전 세계 대학의 지원자들과 경쟁하여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현재 인간 게놈 지도는 완성된 상태지만 아직 95% 이상의 내용은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종합하고 분석, 활용할 수 있는 과학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인 것이죠.” 고 교수는 자신이 담당하는 사용자 교육에 대해 컴퓨터의 예를 들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교육은 크게 사용자 교육과 개발자 교육으로 나눌 수 있어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는 사람들이 ‘개발자’라면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사용자 교육’입니다.” 그는 아직까지 개발자와 사용자 교육에 간극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실험실에만 머물던 이론생물학자에 대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눈 앞에 결과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교육이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인간 유전체 지도가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그 중 의학 분야의 활용은 앞으로 질병과 관련된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지도 모른다. 그는 “생명정보학은 흔히 ‘bioinformatics’ 라고만 생각하지만 저는 꼭 ‘BioMedical Informatics’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의학적 활용이 꼭 필요한 것이죠” 라고 말하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유전체 의학 또는 맞춤의학이라 불리는 생명정보학의 활용은 미국에서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5년 내에 실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학교는 융합학문, 특히 의공학 분야의 융합에 있어 매우 경쟁력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교수님들과 여러 배경학문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점으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가 속해 있는 우리학교 의공학센터의 경쟁력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하기로 유명하다. 의공학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은 의공학자로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박헌국 교수가 2005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로부터 10억원 상당의 워크스테이션 및 서버 컴퓨터를 기증 받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유전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한결같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고 교수의 이번 생어연구소 워크샵 참가를 계기로 의공학교육센터 주관의 생명정보학 사용자 교육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의학과 뇌공학, IT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고 교수. 그가 처음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어떤 것일까. “어렸을 때 본 외화 6백만불의 사나이 아시죠? 그때 주인공을 만든 사람이 외과의사 역할이었어요. 그 의사가 너무 멋져 보여 처음엔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계기를 다소 엉뚱한 대답과 웃음으로 말해주던 그의 모습에서 진지한 인터뷰 내용과는 다른 소탈한 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초과학을 홀대하는 풍토를 지적하며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저는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기초과학이나 연구직을 소홀히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학자의 길이 힘들 때도 있겠지만 돈이 인생에서 성공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그는 분명 행복해보였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찾는 삶의 진정한 의미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 인터넷 Future 경희 - 조호연 기자 monoceros@mediakhu.ac.kr